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가 무신론 (문단 편집) === 냉전 시대 === >'''[[무신론]]을 통해서 [[공산주의]]로, [[종교]]와의 전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 >---- >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산하 '''전투적 무신론자 연맹(''Союз воинствующих безбожников'')'''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이 종전하고, 스탈린이 사망하며 스탈린 격하 정책을 펼친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탈린 격하 정책의 일환으로 다시 종교탄압을 실시하기 시작한다. 동구권 제2세계 국가들도 소련과 비슷한 종교 정책을 폈다. [[알바니아]]의 [[엔베르 호자]]와 [[적도 기니]]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의 경우는 아예 대놓고 ''''무신론 국가''''를 선포해 종교인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호자는 [[테레사 수녀]]의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그가 고국 [[알바니아]]에 입국하려 하자 "종교를 버려야 방문을 허가하겠다"고 하였을 정도이다. 비난이 거세지자 종교를 버려야 출국이 가능하도록 슬쩍 바꾼다. 그나마 호자는 원칙에 충실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응게마는 국가의 [[모토]]를 대놓고 '''마시아스 응게마 외에 신은 없다'''라고 했던 인물이었다. 국가 무신론은 공산당 일당독재와 더불어 거의 모든 제2세계 국가들이 실시한 정책이였다. [[북한]]도 공산주의로서 국가 무신론을 추구하여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나 전통 신앙 가리지 않고 탄압했으며, [[킬링필드]]로 악명높은 [[민주 캄푸치아]] 역시 1978년에 아예 "캄보디아에 더 이상 종교는 없다"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들은 민주 캄푸치아 한 곳을 제외하면 지도자에 대한 '종교적'인 숭배, 즉 [[우상화]]에는 도리어 집착하는 수준이었다. [[동독]]의 문화적 숙청처럼 그나마 점잖은 경우도 있었는데, 1955년부터 교과서와 공식문서에서 과학, 역사, 문화, 미술, 문학 등에서 종교에 우호적인 내용을 일체 빼버리고 교육하는 일련의 작업을 말한다. 그나마 타국에 비해선 박해·탄압 수준이 양호했다고는 평가받는다. 물론 그나마 양호했다는 것이지, 공공연한 탄압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소련같이 교회를 폭파하여 개조하는 등의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라이프치히 대학]]의 유서깊은 교회 건물을 폭파하고 이름도 칼 마르크스 대학으로 개명한 사례도 있었다. 정권 말기에는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교회를 폭약으로 날려버리는 일도 벌였다. 동독 지역은 오늘날에도 비종교 비율이 높다.[[https://commons.m.wikimedia.org/wiki/File:Religious_denominations_in_Germany,_2011_Census,_self-identification_of_the_population.svg#mw-jump-to-license|#]]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체코]]는 [[동독]]과 비슷한 종교정책이 취해졌고, 민주화 이후로도 비종교인 인구비율이 높다. 대표적으로 [[독일]] 동독 지역은 무종교 비율이 75%이나 반대로 [[서독]] 지역은 25%로 전체평균 33%와 큰 차이가 난다.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무종교 비율이 높은 나라들은 대개 20세기에 [[공산주의]] 경험을 겪은 구 [[동유럽|동구권]] 국가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